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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사회

석유는 누가 지배하는가?

by 은익짱짱 2020. 11. 3.

   현대를 대표할 수 있는 물질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과거에는 없었던 수많은 물건을 지금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이런 물건 중 어떤 것이 현대를 대표할 수 있을까?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과거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뒤바꿀 수많은 개념과 물건들이 생겨났다. 내연기관을 사용한 자동차는 어떨까? 확실히 현대의 도로 상황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육상 운송수단의 발전은 사람과 물건을 빠르게 옮겨줄 수 있었고 전통사회가 현대사회로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다른 예로는 컴퓨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의 발전은 기계의 움직임을 정교하고 제어 가능한 범위에서 자동화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를 통해 생산량의 증가를 이룰수 있었다. 또한, 무선통신기술의 발전과 접목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자동차나 컴퓨터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정교한 기계들을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를 사는 우리는 복잡 정교한 기계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어 작동하는 것일까? 답은 바로 석유이다. 현대 인류는 석유가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림 1) 석유화학제품 계통도, 원유의 무궁무진한 활용성을 볼 수 있다.

 석유는 왜 쓰는가

 

  1859년 미국에서 첫 번째 석유 시추가 성공한 이래 석유의 중요성은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산업시대 초창기에 불을 밝히거나 몇몇 기계들을 작동시키기 위해 소소하게 사용되었을 석유는 그 당시에도 수요가 대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활용처가 많아졌다. 전 세계 곳곳에 거대한 공장과 발전소가 건설되어 작동할 때, 도로에 자동차가 늘어나고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이 많아질 때마다 석유의 소비량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는 석유의 활용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석유는 여러 기계들을 작동시키는 에너지원일 뿐 아니라 그 찌꺼기마저 버릴 것이 없는 자원이다. 채취한 석유를 증류, 정제하면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나프타, 파라핀, LPG 등의 온갖 현대 문명의 필수품들이 나온다. 이처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많은 생산성을 자랑하는 자원은 거의 없다. 석유의 활용성과 효율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좋은 채산성은 석유를 제외한 다른 에너지 자원들이 석유를 넘을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온갖 탄화수소화합물 기반의 연료들은 대부분 석유의 정제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자동차, 열차, 비행기, 선박 등에 사용되는 연료는 석유가 기반이다. 석유가 없다면 많은 운송수단은 그저 고철 덩어리가 될 뿐이다. 또한, 석유와 다른 화석 연료들을 태워 전기를 얻는 화학발전소는 전 세계 전기생산량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당장 우리나라만해도 2019년 발전전력량 585,301GWh 중 기력(석탄, 석유, LNG등을 태워 얻은 에너지)발전으로 만 220,918GWh를 얻었다. 신재생 에너지로 단지 30,526GWh를 얻은 것에 비하면 화석 연료로 얻는 전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결국 전기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현대사회에서 석유는 중요한 자원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 석유는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다. 정제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인 아스팔트는 도로포장 등에 활용된다. 플라스틱, 의약품, 기타 화학제품들 역시 석유를 원재료로 하는 물질들을 재료로 하는 것들이 많다. 이런 예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우리가 석유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며, 석유가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자원임을 뜻한다는 것이다.

 

 석유의 제국들

 

  그렇다면, 그 석유를 이용해 이윤을 창출하는 산업은 어떻게 발전했을까? 지금의 현대적인 석유산업은 미국에서 시작됬다. 전기를 이용해 불을 밝히는 전등이 보급되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석유의 가공품 중 하나인 등유를 이용해 밤길을 밝혔다. 미국의 석유 산업은 이런 등유의 사용이 점차 늘어나면서 덩달아 성장해 갔다. 이때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는 미국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등유의 가치와 미래 석유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알아보고 1970, 석유 기업 스텐다드 오일(Standard Oil)을 설립했다. 스텐다드 오일은 록펠러의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합병을 통한 세력확장으로 압도적인 생산량을 확보하고 경쟁 업체를 고사시키는 악명높은 리베이트 방식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1880년대에 들어 전 세계 석유생산의 90%를 차지하는 유례없는 석유 제국을 건설했다. 미국 석유 산업의 발전과 이를 독점하여 돈을 갈퀴로 쓸어담는 스탠다드 오일의 행보를 보고 석유의 가치를 확인한 유럽에서도 석유 기업들이 설립됬다. 석유 산업이 미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된 것이다. 런던에서 조개껍데기 같은 장식품을 팔아 큰돈을 번 마르쿠스 사무엘(Marcus Samuel)의 두 아들 마커스 주니어와 사무엘은 현대에도 건재한 석유 기업, 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을 설립했고 다이너마이트와 노벨상으로 유명한 알프레드 노벨과 그의 형제 루드비히 노벨은 러시아에서 브라노벨(Branobel)을 설립해 스텐다드 오일과 경쟁했다. 그런데도 당시 세계 석유산업의 대부분은 스탠다드 오일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독점상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1911년 미국 정부는 스텐다드 오일의 석유 산업 독점상태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보았고 그로 인해 스텐다드 오일은 32개의 회사로 찢어졌다. 석유 제국이 멸망한 것이다.

 

그림 2) 스탠다드 오일의 분리

 

  석유 제국이 무너지자 유럽계 자본을 바탕으로 한 석유 기업들에 기회가 열렸다. 거기다 스탠다드 오일의 후계자들까지 더해서 그 중 일부는 세븐 시스터즈라 불리는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탠다드 오일 뉴저지(Esso), 로열 더치 쉘(Shell), 스탠다드 오일 뉴욕(Socony), 스탠다드 오일 캘리포니아(SoCal), 걸프 오일(Gulf), 텍사코(Texaco), 앵글로 페르시안 오일(BP)이 그 기업들이다. 이중, ShellBP는 유럽계 자본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며 나머지 기업은 모두 스탠다드 오일의 후계 기업들이다. 이들은 자국뿐만 아니라 열강들이 정복한 식민지나 보호국에서도 석유 산지를 찾아다니며 석유를 채취했고 그 생산과 판매의 주도권은 땅을 제공한 국가가 아니라 기업과 뒷배를 봐주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가지고 있었다. 석유 기업은 이미 식민지거나 경제적 의존국 상태이던 당시 산유국들에 정치, 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특히 당시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유가 공시 조정권을 통해 세계 경제마저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영향력은 마땅히 일국을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기업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로열 더치 쉘은 아직도 건재하며 Esso Socony는 합쳐져 지금의 엑손모빌(ExonMobil)이 되었다. 앵글로 페르시안 오일은 브리티쉬 페트로늄(BP)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Socal Texaco는 쉐브론(Chevron)이 되었다.

 

그림 3) "세븐 시스터즈"의 구성 기업

 

OPEC과 국영 석유기업의 성장

 

  이런 모습은 열강들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식민지가 독립한 이후에도 유지되었는데 산유국들은 독립 후에도 석유산업에 요즘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석유가 나오는 땅은 산유국의 것인데 그 당시에는 이윤의 절반을 기본적으로 외국 기업인 석유 기업이 가져가는 구조였다. 거기다 자기 땅에서 난 자원임에도 유가 책정에 관여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은 산유국들은 석유 산업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국제기구를 설립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이 실행된 것은 1960 8, 원유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석유 기업들이 공시가격 인하 결정을 내린 이후였다. 이에 반발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5개국이 모여 석유 수출국 기구, OPEC을 세운다. 당시 이 5개국의 석유생산량은 세계 원유 수출의 약 80%를 차지하였다. 물론, 설립 초기에는 발언권이 미약했다. 당시 산유국들은 자체적인 원유 시추 및 처리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 기업에 의존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 나라 석유 산업의 절대다수는 외국계 기업이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다 미국의 경제지원으로 인해 OPEC 활동에 미적지근한 베네수엘라와 사우디와 이란의 종교갈등이 맞물려 의견 합치가 어려웠다. 하지만 석유 산업에 관련된 기술개발 투자로 자체적인 석유 생산능력을 갖추고 지속적인 국영 석유 기업 설립 및 외국계 석유 기업 국유화 시도로 산업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또한, 다른 산유국들을 가입시키는 등 여러 노력을 거친 이후 산유국들은 석유 산업의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반대로 민영 석유 기업들의 위세는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오랜 독점으로 인한 안일함 때문인지 그들은 기술 개발과 시설 투자에 소홀했다. 냉전을 거치며 전통적인 중동 산유국들의 기업 국유화 시도와 새로이 등장한 신 산유국들이 국영 기업을 필두로 자국 석유 산업을 성장시키는 것도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기업들은 예전 같은 시장지배력을 잃어버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결성과 더불어 그들의 유가결정권은 산유국들에 넘어갔고세븐 시스터즈의 시대도 끝나게 되었다. 석유 산업의 주도권이 기업에서 국가로 넘어간 것이다.

 

그림 4)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구성국들

 

OPEC의 시대

 

  거대 석유 기업들의 시대가 끝나고 석유수출국 기구의 회원국들이 석유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여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1973 10 26일을 끝으로 제4차 중동전쟁이 아랍의 패배,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나자 OPEC의 아랍국가들은 원유 감산과 과거 원유값의 약 3배에 달하는 고유가 책정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충격을 전 세계에 제시했다. 기존 거대 석유 기업들의 지배력을 빼앗아온 산유국들은 기업들이 유가결정권을 가지고 있을적에 경쟁력 강화를 위해 비정상적으로 낮게 책정했던 유가를 전쟁도 진 상태에서 그대로 둘 생각이 없었다. 거기에 아랍 국가들이 유가를 높이자 다른 OPEC회원들은 물론 소련까지 연이여 유가를 인상했다. 이 결정은 그들이 예상한 대로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석유파동 이전 배럴당 약 3달러 수준이었던 유가는 최대 11.65달러까지 인상되었다. 이로 인해 산유국이나 석유 기업들은 어느 정도 이득을 보았다. 유가가 엄청나게 올랐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석유가 나오지 않는 개발도상국에는 치명타였다. 유가가 거의 3배 정도 뛰어올랐는데 아무 런 충격도 없을 수가 없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1차 석유파동 당시 물가상승률이 약 25%였다. 무역적자가 심각해지자 많은 기업이 중동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필사적인 외화벌이에 성공해 상대적으로 1차 쇼크를 잘 극복한 편이었으나 다른 나라들은 2~3배의 경제성장률 추락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1978 12,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미국에 우호적인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신정부가 들어선 후, 이란은 자국 석유 생산량을 이전의 1/3 수준으로 감산하는 전면적인 석유수출 중단에 돌입했다. 주요 산유국 중 하나인 이란의 이러한 조치는 세계 유가를 단숨에 요동치게 하였다. 이듬해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아랍 산유국들이 원유가격을 자국의 이득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자 유가는 50% 상승했다. 이전 배럴당 13달러 수준이던 유가가 배럴당 약 40달러까지 치솟자 2차 석유파동이 들이닥쳤다. 전 세계 산업이 휘청거렸으며 물가가 오르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이로 인해 달러가 불어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21%로 올려 달러 회수를 시작했고 당시 미국 외채를 빌려 산업화를 하던 국가들은 고금리에 허덕이며 졸지에 엄청난 빛을 지게 되었다. 미국과 서유럽에서 외채를 빌려 자국을 개발하던 동유럽 국가들은 불어난 빛을 견디지 못하고 긴축정책을 폈고 이는 국민의 불만 증가에 이바지했다. 훗날, 공산권의 붕괴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그 이후의 정국 혼란으로 안 좋은 상황에서 석유파동까지 맞닥뜨리며 위기가 가중되었다. 1980년에는 실질성장률이 마이너스대로 진입하고 물가가 최대 28.7% 상승하는 등 한국 경제를 뒤흔들었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은 OPEC의 산유국들이 자신들이 더는 외국의 거대기업에 휘둘리지 않음을 전 세계에 천명한 것이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아랍의 오랜 적인 이스라엘은 두 번의 석유파동으로 경제도 흔들리고 아랍국가들보다 발언력도 약해져 한동안 외교적, 군사적으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한다. 또한 경제 예측을 토대로 복지정책을 추진하던 국가들은 경제적 위기로 인해 복지정책을 축소하거나 취소하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열풍이 불게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산업화를 시도하던 많은 개발도상국이 고꾸라져 현재까지도 발전에 발목을 붙잡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두 차례의 석유파동 시기에 많은 산유국이 경제적 호황을 경험했다. 하지만 해가 뜨고 지듯이 고유가의 시대가 저물면 그들의 호황도 같이 끝나게 된다.

 

그림 5) 과거 유가 변동에 영향을 준 사건들

 

유가에 울고 웃는 나라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석유 산업은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지속되면서 양국은 전비 충당을 위해 원유 생산량을 증가시켰고 석유 채굴 기술의 발전으로 새 유전이 계속해서 발견되자 유가는 점점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자국 석유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 다른 산유국들도 원유 증산에 뛰어들었고 거기에 러시아나 남미의 국가들 등의 신 산유국들이 동참하면서 유가는 지금까지 올랐던 것을 메꾸려는 듯 엄청난 속도로 하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장 점유율 감소 등의 손해를 보면서까지 원유 감산을 독려했지만 유가는 확연히 떨어지고 있었다. 유가 폭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자체적으로 막대한 원유 생산이 가능한 미국과 북해 유전의 발견으로 산유국이 된 영국이 OPEC의 독점적인 유가 결정에 불만을 품고 석유 가격 자유화를 선언한 것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가격 자유화 선언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유가 안정화를 최종적으로 포기하게 하였다. 사우디는 자국 원유 생산량을 단번에 5배 증가시켰고 유가는 그대로 뚝 떨어졌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수준까지 내려가자 관련 산업과 국가들은 도산했다. 영국과 미국은 자국 석유업체가 줄줄이 파산하는 수모를 겪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 에미리트, 리비아 등 석유파동 때 번 돈을 나름 합리적으로 투자해 다른 산업을 육성한 국가들은 간신히 살아남았고 베네수엘라, 멕시코, 알제리 그리고 소련은 석유 폭락으로 재정수입이 급격히 안 좋아지며 경제적인 대재앙을 맞이했다. 이미 석유파동 때 막대한 빚을 진 동유럽 국가들과 저유가로 재정적자가 심해진 소련의 시너지 효과는 공산권의 붕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중남미 국가들은 산업이 무너지자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고 치안이 안 좋아져 범죄율이 급상승했다. 이는 중앙정부의 통제력 약화로 이어져 온갖 범죄 카르텔이 난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유가 시대를 시작한 이라크는 이를 전쟁특수로 해결하기 위해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연합국의 반격과 국제적인 경제 제재를 받아 몰락했다. 당시의 저유가 파동의 여파는 2000년대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저유가는 몇몇 국가들에게는 호재였는데 원유를 수입해 재가공해서 수출하는 나라들은 원자잿값 감소로 호황을 맞았다. 우리나라도 그중 하나로 이 시기를 3저호황(저금리, 저유가, 저환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 이후에는 산유국들이 늘어나고 OPEC의 영향력이 약화하면서 예전 같은 가격담합이 어려워졌다. 또한, 셰일 가스나 오일샌드 같은 비주류 원유 채취기술의 발전과 대체 에너지원을 이용한 발전 방식의 확대로 이전 같은 석유파동은 잘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2000년대 이후로도 종종 유가 위기가 있었는데 인도, 중국 등 고성장하는 국가들과 자체적인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이 증가하는 중동의 석유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며 유가가 지속해서 올라갔다. 또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미국의 정유시설이 피해를 본 것도 유가 상승에 이바지했으며 지속적인 달러가치 하락까지 겹쳐 고공행진 하기 시작한 유가는 배럴당 최대 140달러까지 올라갔다. 이런 고유가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 경제가 위청이면서 그 기세가 꺾였으나 개발도상국의 고성장을 비롯한 석유 소비의 지속적인 증가로 2014년까지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안팎을 오갔다. 2000년대 이후의 지속적인 고유가 기조는 우리나라 같은 수출 위주의 비산유국에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산유국들은 오랜 경제 호황을 즐길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의 남미국가들은 석유로 인한 수익을 국가 복지자금으로 활용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중동의 왕조와 독재 정권들은 막대한 석유 자본으로 모래 사막 위에 마천루를 세우며 그들의 위상을 과시하는 한편, 무기를 사고 군대를 육성하여 전제적인 정권을 유지했다. 러시아는 늘어난 수입으로 소련 붕괴 이후 무너져가던 러시아 경제를 겉보기에는 정상 궤도로 안착시키고 한편으로는 재건된 군사력으로 유럽을 압박했다. 이처럼 산유국들은 10여 년 동안 고유가를 누려왔다.

 

  하지만 2014년 저유가 파동이 일어나며 산유국들은 큰 위기를 맞이했다. 배럴당 100달러 선이었던 원유 가격이 순간적으로 20달러를 찍고 50달러 위아래를 오가게 된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서였다. 중국과 같은 고성장 국가들의 경제 성장이 주춤하면서 석유 소비가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만이라면 산유국들은 쓸 수 있는 카드가 있었다. 바로 감산이다. 하지만 이번 저유가에는 그러지 못했다. 다른 경쟁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로 성장하고 있던 석유 산업계의 신입인 셰일 가스이다. 셰일 가스를 통한 석유 채산성이 점차 좋아지는 데 불안감을 느낀 기존 산유국들은 셰일 산업이 성장하기 전에 고사시켜야 한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셰일 가스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었고 이를 지켜보다가는 에너지 패권마저 미국에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아직 셰일 가스는 손익 분기점이 50~70달러 선이었고 이보다 유가가 낮게 유지된다면 셰일 가스 업체는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저유가 시대가 시작되었고 고유가 때 편하게 지내던 산유국 경제는 아주 힘들어졌다. 석유 수출 수익을 토대로 복지 정책을 유지하던 남미국가들에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는데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한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이고 브라질 같은 다른 나라들도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게 되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 경제 재건의 측면에서 석유와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했던 러시아 역시 경제가 휘청거렸다. 이때 경제가 무너진 몇몇 국가들의 영향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안 좋아진 세계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했고 세계적으로 장기적인 경제불황을 유도했다.

 

그림 6) 세계 유가의 변천사

 

코로나19

 

  석유 산업과 산유국들은 현재 큰 악재를 껴안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문제가 장기화하여 그들의 목을 조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2019년이 끝나갈 무렵 중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의 영향이 크다. 코로나 19 2020 5 2 09시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총 3,282,216명을 감염시키고 237,177명이 죽게 하였다.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실시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과 국가 폐쇄조치로 인해 세계 경제는 엄청난 규모로 위축되었다. 사람들이 바깥출입을 자제하면서 가게에 손님이 줄어들고 매출이 급감했으며 여행을 가는 사람도 줄어들어 숙박업을 비롯한 관광 관련 업종들은 오랫동안 파리만 날렸다.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으니 공장들이 문을 닫아 제품 생산량이 줄었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없어 항공 산업도 손해를 입었다. 재정상태가 상당한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실업률이 급상승한다. 실업률 상승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4월 미국의 실업급여 신청자는 400만 명 수준이었다. 작년 4월에 190만 명 정도였으니 거의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독일 역시 실업자가 3월 대비 약 37만 명으로 급증했다. 세계적인 실업률 상승은 경제가 심각하게 안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IMF 2020년의 세계 경제 성장률을 마이너스 3.0%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경제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의 가치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장이 멈출수록 제품 생산을 위한 석유의 소비도 줄어든다. 사람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와 같은 운송수단의 연료 소비도 줄어든다. 한번 날 때마다 많은 연료를 소비하는 비행기도 뜨지 않는다. 대부분의 연료는 석유로 만드니 결론적으로 석유의 소비가 줄어든다. 결국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셧다운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석유와 관련된 기업과 국가에 큰 악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악재에 대응하기 위해 3 5, OPEC은 회원국과 비OPEC 산유국들을 초청해 장기적인 석유 소비 감소에 대비한 원유 감산을 논의했다. 그리고 합의에 실패했다.

 

사상 최초의 마이너스 유가

 

  2020년은 석유 산업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꽤 기억에 남을 만한 시기가 될 것이다. 3 5일의 합의 내용은 산유국들이 추가로 150만 배럴의 감산을 시행하는 것이었다. 3월 기준으로도 유가는 이미 30% 떨어졌었고 추가 감산 없이는 유가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다. 그런데 여기서 러시아가 추가 감산 거절 및 이전에 약속돼있던 하루 170만 배럴의 감산 연장을 거부하면서 합의는 파행을 맞이했다. 러시아가 원유 감산을 거부한 여파는 며칠 후 나타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석유 생산량을 100만 배럴 늘리고 아시아에 대한 공식 경질유 판매 가격도 인하한다는 결정을 내려 유가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합의 불발로 인해 다른 산유국들의 감산 여부도 불투명해졌고 결국 3 30, 5월 인도분 WTI 유는 2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가가 계속 떨어지자 미국의 셰일 가스 업체들이 파는 셰일 가스의 경쟁력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매출이 급감했다. 결국 많은 셰일 업체가 파산위기에 직면했고 이를 막기 위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사우디 사이를 중재하기까지 했다. 저유가는 산유국에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므로 4 15일에 열린 OPEC+(기존 석유수출국 기구 회원과 더불어 러시아, 멕시코 등의 비OPEC 산유국 들을 초청한 것) 회의에서 감산에 약 970만 배럴 수준의 감산에 합의했다. 이번 감산은 지난 2007~2008년의 경제위기 때 감산한 양의 약 4배에 달한다. 이 정도의 감산에 합의한 것에는 미국의 중재가 크게 작용했다. 저유가 충격으로 미국의 석유 및 셰일 업체가 파산 위기에 직면하고 미국 경제에 충격으로 다가오면서 적극적인 중재와 감산 합의를 끌어낸 것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1000만 배럴의 감산이 엄청난 성과이긴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석유소비량이 약 300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기존 증산량까지 생각하면 1000만 배럴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국,2020 4 17일 기준으로 유가는 배럴당 18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1980년대의 저유가 파동 이후의 유가와 비슷하다. 양국의 저유가 경쟁의 여파가 합의 이후에도 이어져 유가를 계속 낮춘 것이다. 이전에 생산한 석유가 땅으로 꺼지지는 않을 것이고 석유 소비는 줄어드는데 생산된 석유는 많으니 가격이 안 내려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후, 석유를 저장할 공간이 없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고 유가는 점점 떨어졌다. 원유를 사도 당장 사줄 기업도 없었다. 정유 탱크와 유조선까지 끌어들여 남아도는 석유를 보관했지만 결과적으로 유가는 역사적인 대폭락을 경험하게 됬다. 4 20, 5월 인도분 WTI(서부텍사스원유)의 가격은 순간적으로 마이너스 40.32달러를 찍었다. 거의 300%의 낙폭이었다. 물론 선물 거래였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대였지만 그럼에도 사상 최초의 마이너스 유가가 기록된 것이다. 석유를 사도 되팔 기업도 보관할 정유 탱크도 없다는 사실이 석유 가격을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마이너스 유가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돈을 주고 석유를 처분한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저유가는 지속됬다. 그리고 이것은 산유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저유가는 역사가 증명하듯 산유국의 경제와 관련 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전 세계의 국,민영 석유 기업들은 석유를 사주는 곳이 없어 석유를 원유선에 보관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는 산유국의 수입 감소로 이어져 경제지표가 안 좋아지게 만든다. 더 문제인 곳은 셰일가스를 비롯한 비주류 석유 생산 기업과 대체 에너지원 기업들이다. 유가가 내려갈수록 이들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수입이 나지 않게 되어 최종적으로 연쇄파산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체 에너지 산업이 충분히 성장한다면 비정상적인 유가의 영향력을 줄여줄 수 있지만 현재의 대체 에너지 산업은 그 크기가 석유산업에 비하면 미약해 사실상 석유산업에 종속된 상태이다. 대체 에너지원이 환경에 좋다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 미래가 밝아 보일 수 있지만 그 비용이 석유보다 너무 비싸져 버려 가격경쟁력이 안좋아진다면 소비자는 석유에 더 이끌리는 것이다. 이런 기조가 계속 유지된다면 대체 에너지 산업의 앞날은 결국 파산뿐일 것이다. 미국의 셰일 가스 기업들은 배럴당 유가가 30달러 이하로 무너지게 되면 기업들이 더는 버티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유가가 20달러 근방에 머물렀으니 기업들은 점점 버티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과거의 저유가 파동 때와 달리 현재는 세계 경제가 더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있고 지구 반대편의 경제 위기가 우리나라에도 더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경제가 위축된 상태에서 지속적인 저유가로 산유국의 경제가 무너지고 에너지 기업들이 도산하게 되면 그 여파는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유가가 진정되더라도 관련 산업이 입은 상처가 훗날에 어떻게 돌아오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코로나-19는 세계 경제를 밑바닥으로 끌고 갔고 이로 인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기업과 경제적으로 무너진 사람들의 존재는 훗날 더 큰 경제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 각국이 여러 가지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재난지원금을 뿌리며 경기 위축을 막아보려 애쓰고 있고 미국은 양적 완화 정책으로 주가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미봉책일 뿐이다. 현실 경제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후에 다가올 경제위기에 분명 대비해야 할 것이다.

 

석유가 지배하는 세상

 

  석유 산업이 태동한 이후, 많은 것이 변화했다. 석유화학 제품이 현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늘어만 갔다. 석유 제품은 없어선 안될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과거의 걱정과는 달리 지금도 석유는 계속해서 뽑혀져나와 가공되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이런 경향이 달라질 징조는 보이지 않고 있다. 석유의 활용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그 가격은 다른 대체제에 비하면 아직까지 매력적이다. 이런 석유를 생산하는 기업들과 국가들은 여전히 막대한 부를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석유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석유 기업의 영향력은 예전같지 않다. 석유 산업의 주도권을 국가에게 빼앗긴 이후, 그들의 영향력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세계 기업 순위 최상위권을 휩슬던 석유 기업들은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신 산업들에게 그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 기업들이 그들의 자리를 위협했으며 제조업이 주춤하자 IT기반 기업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석유 기업의 아성에 도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석유 기업들은 그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벅찬 상황이다. 전통적 원유 채굴은 셰일가스와 같은 경쟁자에게 도전받고 있으며 이로인해 전통적인 석유 채굴 기업들이 이전과 같은 규모를 유지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이다. 아직까지는 국영 석유 기업들과 세븐 시스터즈의 후계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들이지만 수많은 경쟁자들이 그 아래에서 무섭게 성장해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까지 석유기업들이 왕좌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기업들이 국가의 보호 아래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지 모르나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한다면 먼미래에는 순위가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림 7) 2019년 세계 기업 수익 순위

  산유국들의 앞날 역시 좋게 전망할 수는 없다. OPEC은 출범 이후, 러시아, 멕시코, 영국, 미국 등 비가입국들의 도전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 이로인해 중동과 남미의 전통적인 산유국들은 예전처럼 석유 산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유전을 통해 석유를 뽑아내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원유를 생산하는 기존 석유 산업 자체도 도전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탄소배출량을 감소시키고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각국은 친환경 에너지를 늘리고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고자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갑자기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석유가 아무리 싸고 좋다지만 환경파괴라는 약점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석유 산업의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셰일 가스 같은 새로운 원유 추출법이 등장해 산유국들의 석유 패권을 위협하고 있다. 많은 산유국들이 나라의 운명을 석유에 맡긴 상황에서 그들이 석유 산업의 패권을 빼앗기거나 산업 자체가 부진하다면 그들 국가의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많은 산유국들의 정치구조가 그리 민주적이지 않다는 점과 그 권력 유지에 석유 판 돈이 어느정도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더더욱 그렇다. 석유는 현대 그리고 아마 미래에도 필수적인 자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도전자들은 성장해가는데 석유 산업은 정체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석유 제국들의 전성기는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산유국들은 석유를 통제하기보다는 석유에 휘둘리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석유 없이는 당장에 망할 수도 있는 나라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동, 남미, 러시아 같은 나라들은 사실상 나라의 명운이 유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 국가의 부가 석유에서 유래하는 이상 유가의 등락에 정권의 미래와 국민의 삶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석유 산업 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산유국의 가치는 석유의 가치와 같게 비칠 수밖에 없다. 2014년 이후의 장기적인 저유가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같은 산유국들의 신용도는 지속해서 나빠졌다. 베네수엘라 같은 경우는 아예 국가 복지 체계를 유지할 수 없어져 비정상적인 인플레이션 사태와 기본적인 인프라의 유지 불가 상태까지 직면했다. 석유 자본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독재 정권들은 자신들의 권력 지지기반에 뿌릴 돈이 떨어져 갈수록 불안해질 것이다. 또한, 산유국이 아니더라도 석유 산업의 등락이 자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으로 다가오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유가 변동이 나라 경제를 뒤흔들었던 경험이 있으며 국내 정유업체들은 역사적인 적자를 겪고 있다. 거기에 현대는 과거보다 세계 경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산유국의 경제가 흔들린다면 그 여파는 전 세계로 퍼질 것이다. 과거 유로존 위기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당사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경제까지 흔들었다. 이처럼 석유라는 자원은 세계적으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석유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패권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대체 에너지의 개발과 발전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석유를 대체하고자 나온 수많은 대체재들은 현재로써는 석유와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 왜냐면 대체재들은 석유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며 그 석유라는 경쟁 상대는 놀랍도록 경제성과 활용성이 좋은 자원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석유 패권을 잃고 싶지 않은 산유국과 석유 기업들의 거대한 영향력은 신생 대체 에너지 산업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상대이다. 또한, 석유는 그것이 나는 지역과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내전에는 석유가 끼지 않은 곳이 없다. 석유 자본으로 권력을 쥔 독재자들은 그 힘을 이용해 국민을 탄압하거나 돈을 뿌려 딴소리를 못하게 만든다. 역사적으로 열강들과 석유 기업들은 유전 지대 확보나 자신들의 석유 패권을 사수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분쟁을 일으켰다. 지금은 그렇게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석유의 가치는 그때보다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안 좋아지지 않았다. 석유의 시대가 끝나지 않는 한 인간은 여전히 그 검은 황금 한 방울을 붉은 피보다 가치 있게 여길 것이다.

 

작성자 : 기계공학전공 16학번 김승원

 

 

참고 문헌

20년도판 한국전력통계(89),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통계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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