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2018년도 11월 28일 페이스북 한국항공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복수학위제’에 대한 제보가 접수되었다. 글쓴이는 복수학위제의 개념과 참여 대학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학우들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큰 관심을 얻지 못한 채 묻혔다. 그러나 12월 16일 다시 한번 복수학위제에 대한 제보가 접수되었다. 이전과는 달리 해당 글은 수 백 개의 좋아요와 천 개 가까이의 댓글이 달리며 항공대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복수학위제’란 무엇일까? ‘복수학위제’란, 경인 지역 중 복수학위제 협약을 체결한 교류 대학에서 교과과정을 이수해 학위 취득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한 학생에게 소속 대학과 교류대학에서 각각 별도의 학위를 수여하는 제도이다. 이때, 소속 대학에서 4년을 유동적으로 이수하고 1년은 교류대학에서 이수해야 하며 반드시 1학년 1학기와 4학년 2학기는 소속대학에서 이수해야 한다. 또한 교원 및 보건의료인 양성 등 협약 대학이 정한 특별 전공은 제외하여 진행된다. 지원 자격은 1학년 이상 수료한 재학생 및 복학 예정자이며 교류 대학의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 자이다. 복수학위를 신청하면 교류대학에서 자체 심사를 거쳐 학생의 소속 대학으로 수학 허가를 공지한다.
복수학위제 협약의 체결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18년도 11월 26일 인천대를 중심으로 ‘경인지역 대학 총장협의회’가 구성되었고, 협의회는 경인지역 대학 간 상호 교류,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복수학위 제도를 구축했다. 협약에는 인천대, 강남대, 단국대, 명지대, 서울신학대, 성결대, 안양대, 인천가톨릭대, 칼빈대, 평택대, 한국산업기술대, 한국항공대, 한세대, 한신대로 총 14개 대학이 참여했다. 그러나, 두 번째 복수학위제 관련 대나무 숲 제보로 인해 학생들은 이에 크게 반발했고 복수학위제 문제는 공론화되었다.
[본론]
‘복수학위제’는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총학생회가 발표한 입장표명문과 각종 sns (페이스북 한국항공대학교 대나무숲, 에브리타임, 인스타그램 등)를 분석한 결과 크게 4가지의 복수학위제에 대한 문제점들이 나왔다. 첫 번째로, 복수학위제에 대한 법적 근거이다. 2018년 8월 29일, 11월 14일부로 두 차례에 걸쳐 항공대 홈페이지 학사 공지에는 학칙 개정 공고가 게시되었다. 이 중 신설된 ‘학칙 제27조의 5(타 대학과 공동 교육과정)’ 그리고 ‘학칙 시행세칙 제11조 3항’의 개정이 복수학위제와 연관되어 있었다. 학칙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교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평의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지만 공개된 회의록 중 복수학위제에 관한 학칙 개정에 대한 평의원회의 승인은 없었다.
두 번째로, 복수학위에 대한 학생들에게의 어떠한 공지도 없었다는 점이다.복수학위제에 대한 논의는 2017년 9월 18일부터 시작되었다. 인천가톨릭대학교에서는 2018년 6월에 이미 관련 공지가 올라왔고 인천대에서는 복수학위제 관련 안내 페이지를 별도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항공대에서는 1년 이상의 기간이 있었음에도 안내가 전혀 없었고 그로 인해 학생들은 외부 매체를 통해 복수학위제에 대한 안건을 처음 접했다.
세 번째로, 1년(2개의 학기) 이수로는 전공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항공대 학생들은 4년간의 교수와 연구를 통해 항공우주과학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학위를 취득한다. 1학년때는 전공 공부를 위한 기초 지식을, 2~3학년 때에는 전공 지식을 배운다. 또한 수 많은 실험과 수 개월의 실습을 경험하고 마지막 4학년에는 캡스톤과 종합설계를 통해 4년간 학습한 모든 내용을 활용한 졸업 작품을 제출하고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복수학위제는 앞의 모든 단계를 단 1년짜리 과정에 억지로 끼워 넣어 교류대학 학생들이 항공대 학생들과 같은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전공에 대한 전문성 결여와 그 수준 차이 또한 불가피하다고 보인다.
네 번째로, 복수학위제 취지의 오류이다. 교육부의 ‘복수학위제’ 시행 취지는 급격한 교육 환경 변화와 융합교육 활성화, 경직된 학사 제도 유연화를 통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의 양성이다. 아무리 복수학위제가 국립대에서 경인지역으로, 경인지역에서 전국으로 차츰 확장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는 하나 체결된 학교의 학과들을 살펴보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항공대는 항공우주특성화대학이다. 항공경영대와 공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협약을 체결한 다수의 대학은 신학대, 음대를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교육부의 취지인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인재의 양성과 무관하다. 신학대와 음대를 제외한 타 학교를 고려할지라도, ‘4차 산업혁명’ 즉,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차세대 산업혁명에 필요한 주요 학과들은 이미 항공대에도 연계 전공, 융합 전공을 통해 학습할 수 있기에 항공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큰 메리트를 느낄 수 없다. 더 나아가, 항공대 학우의 입장으로 봤을 때 항공우주과학 분야와 음대, 신학대 등을 융합한 교육과 그 학위가 과연 필요할까? 신학과 음악은 교양 과목으로서 충분하며 복수학위까지 논할 사안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입결’이라는 수치적 차이이다. 이는 자칫하면 엘리트주의, 학벌주의로 비칠 수 있으나 협약 학교 간 입결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노력이 100%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력과 결과 사이에는 유의미한 ‘경향성’이 존재한다. ‘복수학위제’ 협약을 체결한 학교들 간 입결차가 컸다. 항공대에 오기 위해서 학생들은 고등학교 내내 하고 싶은 것을 참고, 해야 하는 일을 선택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러한 노력의 지표라고 볼 수 있는 대학 입학과 학위 취득이라는 권리를 오로지 ‘협약 체결’로 인해 공유해야 한다면? 그것은 교류 대학 학생들에게 다양한 권리를 주는 것이면서도 반대로는 동시에 항공대 학생들의 권리를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고 볼 수도 있다. 입결이라는 수치적 차이에서 오는 대학이라는 권리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학생들이 ‘복수학위제’에 반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은 복수학위제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우선 학생의 입장을 대표하는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신속히 대처했다. 먼저 12월 16일 구글 독스를 통해 항공대 학우들의 복수학위제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다. 이 응답에는 총 2052명의 학생들이 의견을 제출했고 그중 찬성은 29명, 반대는 2,023명이었다. 이후 17일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한 입장표명문을 발표했으며 서명 운동을 진행하였고 19일에는 임시 학생총회를 준비해 두었다. 이후 17일 총장, 총학생회장, 각부 처장을 포함한 5명의 인원이 복수학위제와 관련한 회의를 진행하였고 총장은 학생들이 반대한다면 협약을 추진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고 이에 총학생회장은 구두로 받은 답변은 변동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학우들의 의견과 재발 방지 대책이 담긴 요구서를 전달하였다. 서명 운동은 이후 2,3일차에도 계속 진행되었으며 최종적으로 19일 교무처장의 학사 공지가 올라왔다. 내용은 협약은 기본적 원칙에 동의한 것뿐이며 진행 사항은 각 대학별로 정하도록 되어 있고 아직 항공대는 시행안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이며, 교육 주체인 각 학부와 수혜자인 학생의 동의 없이는 협약사항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외에도 ‘복수학위제’를 체결한 타 대학 (인천대, 명지대, 단국대 등)과 컨택을 통해 외부 상황을 파악했고, 대자보와 페이스북을 통해 신속히 중간 진행 상황을 보고했으며 최종적으로는 학생들의 입장을 잘 피력하여 학생들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고 마무리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 개별적으로도 적극적으로 ‘복수학위제’에 대처했다. 총학생회가 진행한 ‘구글 독스’ 의견 제출에도 2000명이 넘는 학생이 참여했는데 이는 현재 항공대의 재적학생 수가 약 5800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큰 수치이다. 또한, 반대 서명에도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 이외에도 학생들은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 기능을 통해 재학생 인증과 복수학위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필로 작성해 사안을 공론화 시키고 반대 의견을 피력하였다.
[결론]
이번 ‘복수학위제’ 체결에는 세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첫 번째로, 교류 대학 구성의 문제이다. 항공대는 특성화 대학이다. 따라서 전공 수업 외에는 다양한 과목을 수강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내 전공과 일정 부분 관련이 있으면서도 항공대에는 개설되지 않은 과목을 배우는 학과와 교류 사업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항공운항학과와 항공교통물류학부의 전공 수업과 관련된 기상학과, 공대는 자동차, 에너지 등 관련 학과, 경영에서는 회계, 광고학과 등이 있다. 그랬다면 본인의 전공에서 한 걸음 나아가 ‘융합형 인재’로 나아갈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서 말한 교류 대학의 학과를 고려하여 비슷한 ‘입결’ 범위의 타 종합대학과 협약을 체결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학생들도 반발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전공과 관련이 없는 과목이었다면 굳이 복수학위까지 논할 것이 아니라 현재 시행하고 있는 ‘학점 교류’ 활동을 확대하거나, 사이버 강의를 개설하거나, 혹은 학생들의 요구가 많았던 ‘교양 과목 개편’에 집중해야 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복수학위제’ 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 있어서 학칙 개정할 때 학칙을 위배했으며 이에 대한 어떠한 공지도 없었다는 것이다. 복수학위와 관련된 회의에서 지금까지 교류와 관련한 상위 제도(편입, 학점교류, 교환학생 등)를 체결함에 있어 학교의 판단하에 진행되었기에 그 하위 제도인 복수학위제 또한 그렇게 시행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근간으로 새로운 잘못을 논증하려는 오류일 뿐이다. 또한 평의원회를 거치지 않고 학칙을 개정했기에 문제점은 더욱 명확하다. 학칙은 학교 경영의 기본이 되는 규칙으로서 근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학칙 위배’라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관련된 내용을 안내 없이 진행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알 권리’마저 배제한다고 볼 수 있다. 분명한 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것이다. 교수님, 교직원, 총장님, 인프라 등 모든 것은 학생이 있기에 존재하며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도이다. 분명히 공론화가 되기 전 대나무숲에 복수학위제 관련 글이 제보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았다. 첫 번째 제보 이전에도 네이버 포털에 항공대를 검색하면 복수학위제 관련 기사가 수 십 개 존재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알지 못했다. 학칙이 개정되었다는 공지도 알게 모르게 넘어갔다. 만약 학생들이 그 공지부터 문제 삼았다면, 혹은 항공대 관련 뉴스 기사에 관심을 가졌다면 복수학위제가 체결되기 이전에 문제를 바로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반대로 이번 복수학위제에 긍정적인 점도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로,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 그리고 학생들 개개인들이 이번 사안이 공론화 되고 나서 위에 설명했던 것과 같이 신속하게 대처했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단합력이 매우 대단했다. 시험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수에만 연연하지 않고 대표자들은 밤을 새서 대응했고 개별학생들은 학교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참여하므로서 자주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는 과거 항공대 선배님들이 국립화를 외치며 집단 자퇴서를 제출하고, 재단의 지원 차별에 대해 시위를 했던 것 이후로 요근래 가장 큰 단합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학생들이 초반에 ‘복수학위제’에 대한 인지는 늦었을 지라도, 공론화가 된 후의 대처는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복수학위제’ 사건을 계기로 큰 문제가 생겨야만 학교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평소부터 학교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기를 바란다.
두 번째로, 학교 측도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총장을 포함한 5인의 회의와 그에 따른 교무 처장의 공지에서 학생들이 반대하는 협약을 굳이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는 것은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다시 한 번 입증했다는 것과 같다. 항상 학생이 학교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우뚝 선다면 다음에 어떤 일이 닥쳐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학교를 지켜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성자: 항공교통전공 17학번 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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