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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여행

우즈베키스탄 여행기

by 은익짱짱 2020. 11. 3.

하늘을 담은 지붕을 찾아서

1일차, 타슈켄트

 

“Hello..?”

여보세요?”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우즈벡 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오히려 내 전화를 받은 사람이 한국말로 여보세요?’란다.

 

, 여보세요? 오늘 예약했던 사람인데요.”

지금 그러면 아파트 앞인가요?”

그렇지는 않다. 숙소로 추정되는 장소 바로 앞까지 갔었지만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예약한 바로

그곳이라는 느낌보다는 무단칩입하기 바로 직전이라는 기분이 들어서 그만 두기로 하고 눈발이 날리는 타슈켄트의 거리로 캐리어를 끌고 나온 뒤였다.

민혁다시 가자. 미안.”

 

타슈켄트 공항에 내렸을 때 까지만 해도 나 스스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군대가기 전 카자흐스탄을 혼자 돌아다니던 기억은  교만하게 만들었다.

 

‘우즈벡도 똑같지 . 다를게 있겠어?

 

내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은 내가 카자흐를 간 건 아버지 출장 업무에 얹혀 갔던 , 그리고 회사 코디네이터들이 숙소부터 식사까지 책임졌다는 것이다. 카자흐에서 내가  일은 돌아다닌 것 말고는 없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호주를 가자고 하는 친구에게 역으로 영업해서 우즈벡으로 끌고   순전히 나의 책임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2000원이면   있는 거리를 9천원을 주고 호구 잡힌 것도, 유심칩이 없어서 지도조차  보는 상황도 모두  잘못이다.

 

다시 아파트  잠시  스파크 한 대가 우리 앞에 선다.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이다. 예상했던 대로 한국인은 아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 아뇨. 어딘지를 몰라서요… 근데 한국말은 어떻게?...

“아 한국사람이에요.

그렇다고 한다.

사장님을 따라 들어간다. 내가 들어갔던 건물로 다시 들어간다성인 남자 4명이면  들어찰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 4층으로 간다놀랍게도 내가 무단침입하려던 그 문 앞이다.

“아... 여기 맞았구나…”

  여기에요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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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역만리 객지의 거리로 나앉을 뻔했던 잠시동안의 위기는 이제 넘겼다. 다음 우리의 과제는 유심칩이다. 유셀(현지 통신사) 외국인에게 가장 간단한 절차로 유심칩을 판매한다고 한다. 아무렴 상관없다. 당장이라도 인터넷을 쓸 수만 있다면. 사장님이 불러준 택시는  650 정도 돈으로 근처 통신사로 데려가 줬다. 유심칩을  우리는 여유가 생겼다급한 불은  셈이다. 바로  카페에서 중간점검을 하기로 했다. 유셀에서 우리 숙소로 가는 길은 타슈켄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저녁때도 되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우즈벡 음식을 파는 식당에 들어갔다점원이 메뉴판을 보여주면서 간단한 영어로 설명을 늘어놓는다. 샴샤(빵에 고기가 들어있는 구운 만두)2, 쉬르나(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수프)2, 플로프(기름을 잔뜩 둘러 볶은 밥), 주스와 콜라를 시켰다

 

  점원의 상술에 당한 느낌이다. ‘너무 많이 시킨  같은데 비싸게 나오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주스는  컵이 아니라 1리터짜리로 하나가 나오는  보고, 내일 점심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만원이 넘지를 않는다. 둘이서 먹은 저녁 값이 국밥 한 그릇 가격이라는 것이 믿기 힘들었다.

 

2일차, 타슈켄트

 

  말소리에 다시 깼다. 아마 다른 투숙객들이 아침을 먹는 소리인 듯하다. 얼핏 일어나서 씻고 주방으로 가보니 어제 저녁 차 마시면서 잠깐 인사했던 사람이 나를 자리에 앉으라고 말한다. 아침을 준비해주려는 듯하다. 그는 나를 브라더라고 부른다. 아마 동구권에서는 형제의 개념이 우리보다 넓은  같다. 아무렴 상관있을까. 아침으로 녹차에 , 치즈, 버터가 나왔다. 버터를 그냥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빵이 담긴 접시가 식탁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침을 거하게 밥을 먹는 스타일이 아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형제님은 타슈켄트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며 여기서 지낸다고 했다. 간단한 통성명이 오고 갔다.

 

  다시 나온 타슈켄트 거리는 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색색으로 빛나던 거리에 걸린 조명들은 낮이 되자 흉물스러웠다.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이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였다. 우즈벡에서 아미르 티무르는 대단한 위인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기에 그의 이름을 단 박물관은 무언가 있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입장료도 무려 16000(1600) 정도의 거금이다. 그러나 박물관 안의 전시품은 모두 다른 나라에 있는 원본을 본떠 만든 모조품이고 전시 또한 중구난방으로 되어있어 뭐가 뭔지 알기 힘들었다. 우즈벡에 있는 박물관의 기대치가 떨어졌다.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이 이 정도면 다른 박물관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구르 아미르 박물관의 외관과 내부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 근처는 우리 숙소 주변과 다르게 낙후된 지역이었다. 아마 70년대 우리나라가 이런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는 영화 『블랙호크 다운[1]』에 나오는 마을과 비슷하다고도 했다. 식당을 찾기가 도심보다 어려웠다. 구글에서 나오는 가장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기로 했다. 누들 어쩌고 하는거 보니 면이겠구나 싶어서 다짜고짜 들어갔다.

 

도심에서 조금만 나가도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거리들이 흔히 보인다 (왼쪽 사진).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의 모습. 모스크 정문에서는 향수를 팔고 있었다 (오른쪽 사진)

 

  들어가니 현지인들로 넘쳐나는 식당이었다. 자리에 앉아 영어로 주문하니 점원이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다른 점원을 불러 자리를 피했다. 맨 위에 있는 메뉴는 라그만이라는 메뉴였다  시그니쳐인가 싶어서 라그만 두개, 레몬차 두개를 주문했다. 라그만은 마치 해물 없는 짬뽕 맛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라면의 어원이 되는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고도 한다.

 

  차를 두 잔이라고 생각하고 시켰는데  주전자가 나온다.  우즈벡에서는 음료수는 절대로 하나만 시켜야 한다는걸 학습하게 되었다.

 

  친구가 뭔가 아쉬워해서 샤슬릭을  시켰다. 메뉴판에는 ‘샤슬릭 #%^*’ 라고 쓰여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 찾아봐도 좀처럼 무슨 말인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메뉴판에 있는 종류대로 다 시켜 먹었다. 지금까지도 무슨 고기겠거니 짐작만 할 뿐 정확하게 뭘 먹었는지 모르겠다.

 

라그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모습. 우측 하단에 주전자가 하나 더 있다 (왼쪽 사진). 중앙아시아의 면요리인 라그만 곱빼기는 이거보다 많이 준다. (오른쪽 사진)

 

  친구는 전날  여행 와서 현지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에 백번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영화관이 하나 있어 오후에 가기로 했다영화는 대부분 러시아 영화였다. 최대한 대사를 이해하지 않아도 되고 볼거리가 많으며 여자 주인공이 이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마침 포스터 중 배경에 헬기가 날아다니며 비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남녀 주인공이 있는 영화가 있어 우리가 찾는 바로 그런 영화라고 생각했다. 제목을 찾아 번역기에 돌려보니 ‘침략’이라는 영화였다. 티켓 창구에 가서 번역기로 돌려놓은 제목을 보여주고 표를 샀다. 시간이 남아 잠깐 바자르(시장) 갔다 다시 영화관으로 왔다영화관 의자는 쿠션이  죽어서 앉아있을수록 불편했고, 컵홀더도 달리다가  의자가 태반이었다. 자리는 알아서 앉으면 되는 곳이었다. 영화라고 다르지 않았다멋진 액션 같은 걸로 눈요기라도   알았던 예상과 달리 대사가 엄청 많았고, 놀라운 점은 대사는 못 알아들었는데 스토리 전개가 산만하다는게 느껴졌다영화내용은 대충 도시가 물에 잠겼다가 건져지는 것인데,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러시아어에 잠깐 잠겼다가 건져 올려진 기분이었다.

 

3일차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으레 뭐가 있는 나라냐고 묻거나 예쁜 여자 보러가냐고 묻고들 한다. 참고로 사람들이 말하는 김태희가 밭 매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그리고 예쁜 여자는 어딜가나 있다. 내가 우즈벡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서 본 레기스탄 광장이 보고 싶어서 였다. 남들은 미쳤다고 할지 몰라도 칙칙한 모래색 가운데 빛나는 옥색 돔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단순한 일념이 나를 4년을 기다리게 했다.

 

  사마르칸트는 타슈켄트에서 기차를 타고 가야했다. 우리가  기차는 여기서 새마을호 정도 되는 기차인데 기차를 타려고 플랫폼으로 가니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우리의 표를 보고 이코노미 클래스니 비즈니스 클래스로 바꿔준다고 한다. 얼마냐고 물어봤는데 다짜고짜 따라오란다. 여기서는 얼마냐고 묻는 것이 동의의 의미를 띄는지 한번 생각해볼만 하다일단 간다. 우리가 원래 타야하는 칸에 왔을 때 우리가 여기가 우리 자리라고 말하자 똑같은 얘기를 한다. 내가  자리를 바꿔야 하냐고 물었더니  자리가  좋아서란다  돈을 쓰기 싫다고 했다. 이제서야 순순히 알겠다며 다른 곳으로 간다. 여행을 하다보면 근본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지만, 따지고 들기보다는 수긍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들어가 자리를 앉으니 좋은 기차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지지만 내가 각오한 여행의 일부이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역에서 내린 우리는 택시를 타야 함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첫번째 택시기사는 내가  4000(400) 불러 도망갔고(혹자는 내가 너무 짠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타슈켄트에서는 더 먼 거리를 6000숨 주고도 탔다) 두번째 택시기사는 30000(3000부르는 걸 20000(2000)으로 깎아서 탔다. 1.5키로에 과한 가격임이 틀림없지만 기차역이고, 우리는 캐리어를 들고 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합리화를 했다.

 

  택시기사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내가 보여준 주소를 보려면 안경을 써야한다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안경을 꺼내 쓰는 그런 사람이었다. 차는 러시아산 볼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굴러다니는 것이 상상도 안가는 그런 차다할아버지는 ‘루쓰 볼가!’ 라며 나름 자랑스러운 투로 말씀하셨다. 두렵거나 꺼려지기 보다는 기대됐다. 타슈켄트에서 지나다니면서  한번 라다나 볼가[2] 타보고 싶었는데  소원을 생각보다 빠르게 이룰  있었다. 출발할 때 클러치 미트도 잘 되지 않아 부들부들 떠는 이런 차를 타보고 싶었다. 한번 내가 몰아보고 싶다. 두번 말고 한번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숙소같은 것이 있을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긴 타슈켄트도 그랬으니 이젠 좀 익숙해져야 할 수도.

기사 할아버지가 두어번 전화해주니 양복을 입은 땅딸막한 아저씨가 우리를 맞는다. 안내받은 건물은 게스트하우스라기 보다는 학원이었다. 계단에는 공부하라는 내용의 문구들이 쓰여 있었다. 사무실에는  화면에 CCTV 화면이 돌아가며 보였고  중에는 교실들도 보였다. 아마 교장선생님(난 그를 이렇게 불렀다)이 건물주고 게스트하우스도 같이 운영하는 듯했다.  공교롭게도 학원도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학원인 듯했다. 우리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원 사무실과 아이들이 체스를 두는 방을 지나가야 하는 구조였다. 교장선생님은 방으로 우릴 안내했고 시큐리티 맨이라는 경비 아저씨에게 커피 두 잔을 내오게 했다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기에게 전화하라고 했다. 사마르칸트에서는 5달러면 술도 마실  있고, 식사도 하고, ‘펩시도 마실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다.

 

  사마르칸트는 타슈켄트와 다르게 얀덱스(택시 호출 ) 안되는 곳이었다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카자흐에서 쓰던 방법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길가에서 아무데나 대고 손을 흔들거나 서성거리면 아무 차나 알아서 와서 멈춘다. 주소를 보여주고   있냐고 물어본  서로의 합의하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있다횡단보도에서 두리번거리니 3초만에 앞에 차가 선다. 구르 아미르로 가자고 했다. 기사는 시크하게 끄덕이며 기어를 넣었다. 택시비는 도착하고나서 물어봤다 1500 정도이다. 기차역보다 한참 먼 거리인데 사분의 일이 싸졌다. 어느 나라 계산법이냐고 묻는다면 중앙아시아식 계산법이라고 밖에 말 못하겠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파란 돔을 보자  여기 왔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별거 아닐  있지만 나에게는 무슨 이유인지  장면이 그렇게도 보고 싶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함부로 말할  있다. 구르 아미르는 아미르 티무르의 묘이다. 내가 아는  별건 없고 건물이 이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르 아미르를   있음에 기뻤다

 

구르 아미르의 모습

 

  슈와르마(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레기스탄 광장으로 가기로 했다. 티켓판매원이 표를 주며 오디오가이드가 있으니 사용해보라고 권했다. 한화로  5천원 정도 가격이었다객관적으로 봤을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나 이 가격이 여기서 가지는 가치를 생각했을 때, 그리고 외국인에게 항상 다른 수준의 물가를 요구하는 이곳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한참을 고민하고 돌아서려는 찰나에 갑자기  여자가 다가와서 유창한 영어로 150,000(15,000)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레기스탄까지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건 평생을 두고 후회할  같았지만, 이정도 돈이면 하루 예산을 훌쩍 넘을 것이 뻔했다한참을  흥정하다가 여자가 다른 관광객한테 갈거니깐 빨리 결정하라고 했다. 평소에 과묵하게 있던 친구가 만원 아니면 안 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알겠다면서 우리와 같이 가지 않고 지나가는 다른 사람을 붙잡는다아….

 

  사실 이러나 저러나 일장일단이 있던 터라 아쉬운 한편  굳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티켓을 확인하고 들어가려는 바로 직전에  여자가 다시 와서 저 사람들은 러시아말을 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다시 돌아왔다친구는 다시 만원을 불렀다. 가이드도 자포자기한듯 오케이를 외치고 들어갔다예상치 못했지만 그냥 수긍하자.

자신이 레기스탄 광장의 ‘오피셜’ 가이드라고 소개했다. 그럼 미리  얘기를 하던가.

사실  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내용은 우리가 안 들었으면 몰랐을 내용이라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많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질문도 해볼 수 있었고, 짧은 영어로 이런저런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가이드는 내일 가이드가 필요하면 자기 연락처를   있다고 했다. 가이드의 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도 좋지만, 카페에서 여유도 부리고 택시도 타는 여행이  하고 싶었다. 아쉽지만 괜찮다고 하고 제안을 물렸다. 아직도 사실 살짝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가이드에게 레기스탄 광장에 조명이 언제 켜지냐고 물어봤다. 5 반이면 불이 들어와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시간이 살짝 남아 삼사와 커피를 먹고 친구가 타슈켄트에서부터 머리를 자르고 싶어해서 머리를 현지에서 최신 유행하는 머리로 깔끔하게 자르고(라고는 했지만 생도의 머리에서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 보였다.) 다시 오니 레기스탄은 이미 조명을 받아 아름다워졌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내가 쓰기에 민망한 단어라고 생각해서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데, 이번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레기스탄에 대한 설명을  시간이나 들었으니 죄책감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던  고등학생 정도  여자 둘이 우리에게 왔다엄청 설레는 표정을 하고 우리에게 안녕하냐고 한국말로 물었다 어떤 종류의 호객행위인가 싶어서 벙쪄있는데 자기는 한국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사진 하나만 같이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이게 뭐지. 어려운  아니라 흔쾌히 해주기로 했다. 카메라 어플에 본인들에게는 귀여운, 우리에게는  오글거리는 필터를 끼워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궁금해서 한국말 어떻게 배웠냐고 물었다. 자기들은 방탄소년단블랙핑크, 트와이스 같은 한국 가수들이 좋아서 한국말을 배웠단다. 한류의 침투력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레기스탄 광장의 해지기 전후 모습

 

 

 4일차 사마르칸트

 

  사실 사마르칸트에서부터는 택시와의 전쟁이었다. 타슈켄트처럼 명확하게 비용이 표시되는 택시 어플이 없기 때문에 택시를 타기 전 꼭 행선지와 가격을 물어보는게 일이다. 하필이면 숙소와 주요 유적지들이 거리가 꽤나 떨어지는 바람에 하루의 시작은 택시 기사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타슈켄트에서 6-700원이면 가는 거리를 사마르칸트에서는 1500-2000원을 내야한다. 내가 모르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먼저 합승했던 현지인들은 500 이상을 내는걸 보기 힘들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요금도 안 나오는 금액이라고 애써 이성적으로 생각하고자 노력하지만, 이 돈이 여기서 가지는 가치를 생각한다면 택시기사들에게 이 돈을 쉽게 쥐어 주기는 어렵다. 게다가  돈은 내가 군대에서 어렵게 모은 돈이란 걸 떠올린다면 더더욱 그렇다.

 

사마르칸트에서의 이틀날은 중요한 유적지를 돌아보기로  날이다. 처음은 비비하눔 모스크라는 곳이었다. 아미르 티무르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왕비를 위해서 지은 모스크라는데 도대체 얼마나 미인이었길래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를 지어 놓았나 싶다. 중앙에는 거대한 코란 받침대가 있는데 이곳을 세 바퀴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서 사람들이 돌고 있으면 같이 돌아볼까도 했지만 도는 사람은 없고 어떤 백인 여자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받침대 밑을 기어들어갔다 나오길래 없었던 일로 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몰라도 사람은 별로 없었고,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라는 명색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안내도 없었으며 모스크의 외벽은 군데군데 부서져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가 비자도 면제하고 관광산업 발달에 크게 신경 쓰려는 것 같지만, 어떻게 해야 관광 산업이 발달하는지는 잘 모르는 듯하다. 외국인에게는 입장료를 10배는 많이 받고, 그럴 듯한 영어 설명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유적지에서 사진만 찍고 오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즈벡 여행이 실망스럽지 않음은 파란 지붕이 달린 거대한 이국전인 건물은, 어디서나   있는 흔한 장면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비비하눔 모스크의 정문과 모스크 건물 곳곳에 손상된 부분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이유는 사마르칸트의 아프로시압이라는 곳에서 고구려사신으로 추정되는 모습이 있는 벽화가 발견되어서이다우리나라 대통령들도 중앙아시아 순방을 돌면 이곳을 꼭 방문하곤 한다. 박물관은 꽤나 외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박물관에 입장하니  남자가 다가와서 자신이 영어, 러시아어, 페르시아어, 일본어 등의 다양한 언어로 박물관 가이드를 해줄  있다고 하며 다가왔다. 돈과 지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던 차에 친구가 한국어로 안되냐고 물어보자 ’그건 좀…’ 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자리를 떴다  레기스탄에서 가이드를 이용했을  나쁘지 않았던 탓에 내가 다시 불러 세워 영어로 설명해주는데 얼마면 되냐고 물었다. 2500원을 불렀다. 어제보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눈  감고 해 달라고 했다. 다행히 가이드를 써서 후회한 적은 없다. 그냥 들어갔다면 ‘돌이네’, ‘항아리네하고 끝냈을 것이 분명한데 가이드는 충분한 배경설명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줬다. 아프리시압 박물관은 한국과도 연관이 많다고 한다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사신의 모습 때문인데 앞에서 얘기했듯이 박물관 한국 대통령도 들려보는 곳이다박물관 지도에는 Korea ODA(Official Development Aid) 라고 써 있기도 하다박물관의 메인 홀은 아프라시압 벽화 원본이 있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유리벽으로 막아 놓았을 텐데 이곳은 유리 난간으로만 되어있다. 이렇게 둬도 되나 싶다. 그나마도 유실되어 아주 일부분만 남아 있는 것인데 말이다. 유리 난간에도 Korea ODA  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이 왔다 가고 한국에서 유리 난간도 만들어줬다고 한다.

 

아프라시압 벽화의 원본 중 고구려 사신도가 있던 자리. 풍화로 인해 많이 유실되었고 이를 막고자 현재는 박물관 실내에 위치

  

  박물관 뒤로는 실제 아프로시압 유적지가 있다. 다른 유적지처럼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있는 곳은 아니다풀이 자라는 초원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양들과 아이들도 있었다. 좀만 걷다가 나올까 싶어서 들어간 곳이었지만, 의외의 수확이었다. 인공적인 잔디밭이 아닌 진짜 초원을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생각보다 넓어서 가볼까 했던 곳까지 가지도 못했다. 초원에서 나고 자라는 유목민이 시력이 5.0 이른다는 말은 어쩌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박물관 뒤편 아프라시압 유적지 실제로 도시가 있던 자리지만 현재는 양들이 풀을 뜯는 초원이다 .

 

5일차 사마르칸트

 

  5일째 날에는 사마르칸트에서의 일정이 거의 마무리되어 울르그벡 천문대만 보면 됐었기에 남은 시간동안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여유있게 돌아보기로 하고 아침 늦게 일어나 준비해서 가기로 했다울르그벡 천문대는 우리 숙소에서 가장 멀리 있는 유적지였다. 우리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택시를 타보고자 했다행선지와 가격을 확인하는 것은 같지만 흥정을 위해서 한번 튕겨 보기로 했다. 우리가 잡은 택시 기사가 손가락을 2개와 10개를 펼쳐 보였다. 20000(2000정도 가격 가겠다고 하자 한개와 5개를 펴보인다. 15000 가격인건가. 그렇다고 하면 싸게   있다. 택시를 타고 울르그벡에 도착해서 1500원어치 돈을 내려고 하자 열배의 금액을 부른다. 내가 잘못 봤나 했다. 분명 15000숨 부른 거 같은데. 택시를 타면서 짜증이 난 적은 많지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처음이다. 내 실수였을 수도 있다. 숫자를 제대로 확인했어야지 싶기도 하다. 근데 다른 택시들은 20000숨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무슨 근거로 150000숨이나 부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너무 어이가 없어 택시기사에게 한국말로 쏘아붙였다. 한국에서도 이정도 거리에 이 금액을 받지는 않는다고 언성을 높이자 택시기사는 벙찐 표정을 하고 러시아어 번역기를 꺼내 달라는 눈치다. 파파고를 틀어주고 기사가 했던 말이 한국어로 슬금슬금 나왔다.

 

“뭐가 문제인가형제여”

 

  맥이 풀리는 질문이다 필요없고 15000원을  수는 없었다. 내가 화낸 자존심 때문이라도 온전히 다 지불하기는 싫었다. 할말을 잃어가는 도중, 뒤에서 상황을 보던 친구는 100000숨에는 안되겠냐고 묻는다. 택시기사가 알겠다고 한다. 괘씸하다. 아니면 할일이 없을까봐 걱정한 우릴 위해 준비한 다이나믹한 이벤트였을까?

 

  한동안 분을 삭히지 못하고 씩씩대고 있었다덕분에 예상치도 못했던 과도한 지출이 생겨 울르그벡 티켓값을 내고 나자 200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왔으니까 안 볼 수는 없고 해서 일단 천문대에 들어가서 살펴보았다. 택시기사한테 손가락욕도 못하고 온건 차치하더라도, 당장 시내로 나갈 택시 탈 돈도 없었다. 천문대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난관을 타개할 만한 대안을 마련해야했다. 달러가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 돈을 쓰려면 우즈벡 숨으로 환전을 해야 했다. 환전을 하려면 시장에서 암매상들과 거래를 하든지, 은행을 가는 방법이 있었다. 은행과 시장은 서로 멀지 않았고, 우리와 시장, 은행은 이미 충분히 멀었다. 그나마 가까운 시장까지 40분 정도 걷는 것이 똑똑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수중에 있는 200원 남짓한 돈으로 택시를 타는 짓은 대책없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되어, 멍청하게 걷기로 했다. 사실 걷는 것 자체가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다. 차로는 다니면서 보이지 않는 장면들을 보게 되는 여유가 있다. 이번엔 단지 우리가 가는 길이 제대로 된 인도가 없었을 뿐이다. 어제 시장에 들르면서 암매상이 있는 것은 보았지만, 제대로 된 환율을 쳐주는지는 미지수였다. 최근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바로는 암매상 환전은 시세도 오히려 좋지 않고, 신변에도 위험할  있어 은행으로 가는 것을 추천했다. 구글 기준으로 환율이 1달러에 9500숨이 살짝 넘는 가격이었다당장 돈이 없어 상황이 급박하니 8500숨까지는 양보하려고 했다. 시장에서 어제 암매상들  곳까지 갔다. 예상대로 우리를 보자 암매상들이 달려든다왁자하게 흥정하려던 찰나

 

”한국말로 해요한국말로! 

 

암매상들 가운데 한국어를 하는 암매상이 있었다나한테 한국사람인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여기  똑같아요. 1달러에 9500 우즈벡 . 

 

예상하지 못했다진짜 똑같이 받는다많이 봐줘서 시세가 8500숨은   알았는데잠깐 담배  태우면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러세요. 어차피  똑같아요.”

 

친구도 예상치 못한 눈빛이었다. 그가 다가왔다.

 

학생이에요?”

“네맞아요한국말 어떻게 이렇게 잘하세요?

 

이건 상업용 멘트가 아니었다.

 

“한국 어디에서 있었어요?

“아  여러군데요. 경기도 쪽에 오산평택동두천에도 있었고요.

 군대 있을 때 동두천에도 여러 번 갔어요! 

 

그는 한국에 있었을  한국인 친구들과 플로프를 자주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덕분에 환전은 쉽게 끝낼  있었다.

 

  일정을 일찍 마치고 돌아와 맥주를 한잔 마시기로 했다원래는 어제 갔던 곳과는 다른 곳을 가보려고 했지만, 거리도 멀고 어제 갔던 곳도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했기에 전날과 같은 곳을 가기로 했다. 우리가 들어가자 어제 있었던 점원이 단골 손님 받듯 반갑게 인사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전 날 갔을 때도 동양인이라고는 우리 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시가면 충분히 기억할 거라고 생각했다. 전 날 마셨던 투보르그(덴마크 맥주)2잔과 튀김류를 시켰다. 이렇게 시키면 둘이 합쳐서 150000(15000) 남짓 나왔다. 점원은 종종 우리 테이블을 정리하러 왔는데 (우리에게만 특별했던 것은 아니고 이곳에서는 조그만 휴지라도 점원이 와서 바로 치워가는 것이 보통이다)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업무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 여행 중이라고 했다. 단지 레기스탄 광장이 보고 싶어서 한국에서 왔다고. 점원은 사마르칸트보다는 다른 곳이  좋다고 했다. 타슈켄트 같은 도시는 훨씬 깔끔하고 새로 만든 도시라서 좋다고. 사마르칸트도 충분히 멋진 도시지 않냐고 묻자, 자기는 옛날 도시라서 타슈켄트가 더 좋다고 받아쳤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자기 사는 곳보다는 다른 곳이 더 좋은 법이다. 우리가 계산하고 떠나려고 하자 점원은 벌써 가냐며 아쉬워했다. 나 또한 이번이 사마르칸트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6일차 부하라

 

  사마르칸트에서 부하라까지는 우즈벡의 고속철에 해당하는 아프라시압이라는 기차로 이동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KTX 되는 기차인데, 이전에 탔던 기차와는 다르게 시설도 좋다. 부하라역은 부하라에 있지 않다. 카간이라는 15키로쯤 떨어져 있는 도시에 있다. 부하라역에 내리면 택시기사들이 벌떼 같이 달라붙는다. 원래 우리는 카간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부하라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택시기사 한 명이 계속 우리를 따라붙었다. 내가 지금 택시 안 탈거라고 하자 15키로가 멀다고만 반복했다. 우리는 택시기사를 따돌리려고 기차역 바깥으로 나갔다. 진짜 괜찮냐고 물었는데  웃으며 문제없다고 했다.

 

  택시기사를 어렵게 따돌리고 그렇게 캐리어를 끌고 조금 걸어나가니까 상권이 죽어가는 것이 보였다. 사마르칸트에서는 흔하게 보였던 라바쉬(케밥)집도 하나 없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바와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해 잠깐 담배를 태우려고 멈춰 섰다담배 불을 붙이자 마자 바로 어떤 택시가 구석에서 튀어나와 ‘탁시?’하고 물었다. 카간에서 식당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카간에는 식당이 없고 부하라 구도심을 가야지 식당이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따라붙었던 택시기사도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럼 부하라 구도심은 얼마냐고 묻자, 5000원이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6000원에 갔다고 했는데, 5000원이면 준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번  후려쳐 보려고 4500원을 부르자 구도심에 4500원에 갈 정도로 돈이 없으면 담배는 어떻게 살 거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했다. 백번 옳은 말이라서 5000원에 가기로 했다.

 

  부하라도 사마르칸트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도시 전체가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부하라 구도심은 사마르칸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사마르칸트가 경주같은 도시였다면, 부하라 구도심은 전주 한옥마을 같은 느낌이었다구도심 안에 식당과 숙소들이 모여 있었다. 카간에  아무것도 없는지 대충  법했다. 우리 숙소도 문 앞에 나오면 바로 칼란 미나렛이 보이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유적지가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고 친구와 난 부하라에 도착한 당일은 그 다음날을 위해서 일정을 비워 두기로 했다.

 

숙소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보이는 칼란 미나렛. 캐러밴들은 저 미나렛을 지표삼아 이동했다고 한다.

  

 

7일차 부하라

 

  여행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우리의 재정상태에 대해서 예측 가능한 상태가 되어 난 친구에게 이제껏 긴축했던 재정을 풀겠다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친구도 본인이 갖고 있는 숨이 남을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돈에 대해서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던 우리도,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지출은 여전히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지출이 가치 있게 쓰이는지 여부보다는 일단 돈이 나간다는 것이 나에게 더 크게 와 닿았다. 똑같은 10000원이더라도 택시비로 쓰일  보다 가이드에게 주는 값이 훨씬 가치 있게 쓰인 것이지만, 처음 드는 생각은 일단 지출이 생긴다는 점만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그건 내가 엄청난 구두쇠가 아니라 우즈벡에서는 카드를 쓰기 힘들어 우리가 환전해온 30만원으로 항공권, 기차 값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아르크 고성에서 만난 선생님은 나로 하여금 그런 종류의 걱정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 아르크성을 둘러보고 나온 도중에 영어를 잘하는  남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며 이곳에 감옥이 있는데 한번 보라고 했다당연히 한번 보라는 말을 지나칠 이유는 없기에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성으로 들어오는 길에 계단이 없는 이유도 말을 타고 죄수들을(주로 정치사범말로 끌고 와 이곳에 던져 넣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 근처에 더 큰 감옥이 있는데 보러 가자고 말하고는 순식간의 우리의 동의를 받아냈다. 그는 길을 가면서 자신이 역사 선생님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주말이면 수업이 없어 이곳에서 가이드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의 투잡이 제한된다는 개념이 없어도 충분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라에서  정도 영어 실력과 역사적 지식을 갖추려면 필시 인텔리일 터이다. 그가 우리를 데려간 감옥이라는 곳은 관광객도 별로 없었다. 구글 지도에서 들여다본 관광지였으나 별거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쉽게 넘겼던 곳이었다. 그도 우리가 이제껏 만났던 여느 가이드들과 같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아르크성 뒷 편의 모습

 

 

  그는 우리를 시장에 가보자고 했다. 시장은 도시마다 가봤지만, 현지의 시장을 가보는 것은 나의 빠지지 않는 여행 루틴이기때문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우즈벡의 시장이란 시장은 다 들쑤시고 다닌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멜론을 찾기 위해서이다중앙아시아 지역은 건조한 사막지형이기 때문에 과일의 당도가 매우 높다. 따라서 관개시설로 물만  조달한다면 맛있는 과일이 나온다. 카자흐와 키르기즈에서 먹었던 멜론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우즈벡에서 혹시나 그런 멜론을 찾을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계절이 계절(1)인지라 찾아보기 힘들어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슬쩍 멜론 이야기를 꺼내 봤다. 이곳 멜론이 맛있다고 들었는데 겨울이라 나오지 않나 보다라는 식으로 말하자, 겨울에는 윈터 멜론이 나온다며 우리를 멜론이 있는 데로 데려갔다. 가판대 주인아저씨가 수박 맛볼  주는 거처럼 우리에게 멜론을 잘라줬다. 나도 나였지만 친구에게 중앙아시아 멜론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예상했던 대로이다. 이게 진짜 멜론이지어쩌면 멜론이 아니라 꿀일지도 모른다. 혹시  글을 읽는 누군가가 중앙아시아에  일이 생긴다면 멜론을  먹어보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우리가 이제껏 먹었던 멜론은 가짜다.

 

  가이드를 마친 선생님은 자신이 차가 있고 다음날 가이드를 도와줄  있는데 같이 가겠냐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을 했다. 사마르칸트를 보고  우리는 부하라에 약간 텐션이 떨어진  느꼈다. (그렇다고 부하라가 지나쳐도 되는 도시라는 것은 아니다. 부하라만의 매력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친구는 이번 선택에 있어서 전적으로 모든 판단을 위임하였고 난 약간 새로운 방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역사선생님에 제안에 알겠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점점 말을 잃어갔다필요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아무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물쭈물대고 있을  우리보다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And the price?...”

 

  난 이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구질구질해짐을 느낀다깔끔하게 딱딱 써붙여놓고 하면  좋으련만 이곳은 특히 그렇지 못하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부르는 대로 드리고 싶었으나 나의 주머니 사정도 같이 돌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그렇지 못하고 적정 선에서 끊었다. 더하여 그 다음날 가이드 비용도 같이 흥정했다. 그는 떠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며 떠났다. 그의 이름은 울루그벡이었다. 역사선생님에 어울리는 이름이다라고 생각했다.

 

8일차 부하라

 

  우리는 선생님을 만났던 아르크 성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일찍부터 나와서 기다렸는데 선생님은 마치 매복해 있다가 나타나듯 모습을 보였다. 인사를  , 그가 우리를 차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차에는 누군가 타고 있었는데선생님은 자신이 운전하는 것을 싫어하여 사촌이 같이 왔다고 했다. 그가 어제 자신의 차가 티코라고 말했던 걸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처음 우리를 데려갔던 곳은 무함마드의 후손들이 묻혀 있는 영묘였다. 이름도 말해줬는데 워낙 현지발음이라 따라하기도 어렵고 기억해 내는 것도 힘이 들어 생략하겠다.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갔다. 이런 곳도 있나 싶었다책에서도 못 봤던 곳인데. 도착해서 내린 곳은 이전에 갔던 샤히진다 영묘와 비슷함 곳이었지만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랐다. 부하라 시내에서 떨어진 이 곳은 조용함을 넘어 고요했다. 한국에도 이렇게 조용한 곳이 있을까 싶었다.

 

  난 차를 타고 가면서 선생님에게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보통 우즈벡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그도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무슨 언어로 말하는지, 군대는 가는지, 보통 결혼은 언제 하는지 등의 시답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선생님 당신은 아이가 셋이 있다고 했다. 그 중에 큰 딸은 타슈켄트에서 공부한다고 했다. 21살이라고 했으니 아마 나보다 1~2살 정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었다.

 

  두번째로  곳은 아미르의 여름 궁전이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부하라 구도심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는데특이하게도 우즈벡에서 다른 유적지와 다르게 러시아 양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이었다. 주변에 운하가 있어 여름에는 이곳이 다른 곳보다 10 정도 시원하다고 했다.  붉은 군대가 우즈벡에 침공하였을 때 붉은 군대는 아르크성에 아미르가 있다고 생각하고 성을 공격했는데, 아미르는 이때 여름궁전에 있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보던 것과는 다른 느낌의 건축물을 보자니 새삼 신기했다. 선생님은 흥미로운 이야기도 했는데, 여름궁전 안에 있는 수영장에서 후궁들이 놀고 있으면 아미르는 가까운 곳에 만들어 놓은 높은 의자에 앉아 빨간 사과를 던졌다고 한다.  사과를 주운 후궁은 왕과 같이 있을  있었다고 한다.

 

아미르의 여름궁전

 

  일정을 잡을   꼼꼼하게 따져봤다면, 저녁 기차를 타고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어도  일이었다. 나의 불찰로 인해 우리는 타슈켄트에서 하루  머물게 됐었다. 처음 숙소로 익숙하게 돌아온 우리는 형제님에게 우리가 다시 돌아왔다고 인사한다. 사장님은  계신 듯하다. 처음 와서 쓰던 방은 이미 다른 손님이 들어와 있어 침대 세 개짜리 방으로 안내받았다.

 

9일차 다시, 타슈켄트

 

  친구는 오기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TV그프로그램에서 봤던 나보이 문학관에 조명희 기념관이 있으니 가보고 싶다고 했다. 우즈벡을 떠나기  그곳을 가기로 했다. 조명희 기념관은 나보이 문학관 구석에 1 남짓한 조그만 방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곳은 일제시대 러시아로중앙아시아로 내몰린 문학인의 흉상과 언젠가 조선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소망하는 소설 구절로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했다. 조명희 시인의 삶은 기구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는 삼일운동 이후 감옥에 투옥되었고, 소련으로 망명한 후에도 중앙아시아로 내몰린 뒤 일본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써 소련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 처형당했다. 조명희 시인의 삶이 모든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의 삶으로 대변될 수는 없겠지만, 다른 고려인들도 이역만리에서 말 못할 수모를 겪었을 것이다.

 

나보이 문학관 한 켠에 자리한 조명희 기념관

 

 

  우즈벡 곳곳을 다니며 라그만을 여러 번 먹었다. 친구는 우즈벡 음식이 입에 잘 맞았다고 하는데, 특히 라그만을 빼놓지 않고 주문했다. 언젠가 한번 길을 가다가 친구는 타슈켄트에서 처음 먹었던 라그만만큼 맛있는 라그만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타슈켄트로 돌아오면 마지막 식사를 하즈라티 이맘 모스크  라그만 집에서 먹기로 했다. 확실히 그곳보다 싸고 양도 많고 맛있는 라그만 집은 찾기 힘들었다. Qorosaroy Lagmon’ 이라는 숨은 맛집이다. 여전히 메뉴판을 읽기 힘들었지만 목적이 분명해 주문은 어렵지 않았다.  다시 라그만을 받으니 한국에서도 가끔  음식이 생각날까 싶었다 년 전부터 오고 싶었던 우즈벡 여행이 마무리된다고 하니, 약간의 허탈감도 느껴졌다.

 

에필로그

 

  우즈벡 여행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1월 말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반년이 넘도록 유의미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도 7월 현재 여행 목적으로는 갈 수가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우즈벡 여행은 그렇게 얼떨결에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여행이 되었다. 만약 여행 일정을 한 달만 늦게 잡았으면 우즈벡에 가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남들에게는 대단하지 않은 곳에 갔다 온 시답지 않은 썰 풀이정도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처음 레기스탄 광장을 사진으로 본 순간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때가 생각난다. 그걸 원동력으로 고3, 재수, 군대에 있던 시기에 어려울 때 마다 나를 달래기도 했다. 나한테는 그런 여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기에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여행을 갈 수 있음은 어쩌면 다시는 없을 기회였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행이 나에게 더 의미 있게 남아있다.

 

작성자 : 물류전공 17학번 임세혁


[1]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2년 개봉작. 미 특수부대와 소말리아 민병대가 조그만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말리아 모가디슈를 배경으로 시가전을 벌이는 영화

[2] 러시아의 현지 자동차 브랜드.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차는 1980년대 출시되었던 일명 각그랜저정도로 이해하면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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