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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학교

그런데 그것이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로또의 확률로 증명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야기-

by 은익짱짱 2020. 11. 3.

·볼티모어의 주식 중개인

[Space x가 유인 민간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직후 테슬라의 주식은 급등했다. 지금이라고 생각했을 때 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샀어야 했는데... 출처: 구글 주식]

 당신은 어느 날 웬 주식 중개인으로부터 청하지도 않은 뉴스레터를 한 통 받는다. 그 안에는 어떤 주 식이 대폭 상승할 거라는 팁이 적혀 있다. 일주일 뒤, 이 주식 중개인이 예측한 대로 주식은 대폭 오른 다. 다음 주에도 똑같은 뉴스레터를 받는데 이번엔 폭락할 것이라 적혀 있고 그 주식은 실제로 폭락한 다. 이후 10주 동안 이처럼 매주 새로운 예측을 담은 정체불명의 뉴스레터가 도착하고 매번 현실로 드 러난다. 자, 11번째 주가 되었다. 이 중개인은 자신에게 투자하라고 당신에게 권유한다. 그리고 지난 10주간 충분히 증명해 보인 자신의 예리한 시장 감각의 대가로 두둑한 수수료를 요구한다. 당신이라 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투자회사의 임원이고, 위의 족집게 주식중개인에게 투자하기로 결정하였다면 그 순간 투자회사는 길거리로 내앉게 되었을 것이다. 10번을 전부 맞춘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닌 필연일 수 도 있겠지만, 한 가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볼티모어의 주식 중개인이 메일을 받은 사람은 당신 혼 자만이 아니라는 것. 수학적으로 10번의 등락을 예측하는 일은 동전 던지기 실험에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험자가 10번의 앞면 뒷면을 전부 맞추는 확률은 1/1024이지만, 이 확률을 아득히 상회하는 실험을 한다면? 10,000번의 예측 속에 한 번도 맞추지 못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이 실험을 볼티모어의 주식 중개인의 사례에 대입해보자. 메일을 1024명에게 보냈다면 반드시 한 사 람은 10번의 예측을 전부 사실로 듣게 된다. 10,240명에게 보냈다면 10명의 투자자가 생기는 셈이다. 10,000건의 전자메일로 10명의 투자자를 얻는 이 트릭은 단순하지만 매우 빠지기 쉬운 속임수이다. 1/1024라는 확률은 현실에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시행 수에 비하면 일어날 확률은 100% 에 가까워진다.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은 반드시 일어난다. 나와 생일이 같은 친구를 같은 반에 서 만나는 것 같은 흔한 사례부터 로또 번호가 연속으로 같게 나오는 희귀한 사례까지, 현실에서 접할 수 있는 확률 이야기를 예로 들어가며 알아보자.

 

·왜 나만 빼고 당첨 되지? 로또의 확률

 어디에나 걸려있는 로또 당첨집, 매주 나오는 5~10명의 당첨자들을 보면 두드리면 언젠간 열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한 번 쯤은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로또를 사 지갑 한 켠에 간직해둔다. 힘 든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상상이다. 경찰관인 나의 누나도 토요일만 되면 TV 앞에 쪼르륵 모여 로또 의 번호를 대조해본다. 매번 안 되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같이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확률과 통계를 배운 이과에겐 복장이 터지는 소비이지만 뭐 어쩌랴, 누나가 행복하다는데.

 생활 속에 스며있는 로또를 분석해보면 또 신기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어떻게 그 낮은 확률을 뚫고 매 번 당첨되는 사람이 나오는 것 일까? 이를 위에서 증명한 확률론으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 다. 로또 시행 횟수가 담청 확률을 상회한다. 45개의 숫자 중에서 6개의 정해진 숫자를 맞출 확률은 약 814만 분의 1이다. 한 장당 1000원으로 계산했을 때, 약 81억 4천만 원 어치만 팔려도 당첨자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떨까? 아래의 표는 2020년 4월 기준 로또 6/45의 판매액이다. 근 10 회간의 판매액만 봐도, 81억의 10배 이상이 일주일간 팔린다. 종이로 따지면 8000만 장이 팔리는 것 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매주 당첨자가 안 나오는 것이 더 이상하다. 아무리 작은 확률의 사건이라도 시행 수에 비교해보면 일어나는 게 더 자연스럽다. 로또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하면 작은 확률처럼 보이는 사건도 발생하는 것을 보면, 2주 연속으로 같은 번호가 당 첨되는 일도 가능할까? 2009년 9월 6일과 9월 10일, 불가리아에서 당첨 번호가 2주 연속으로 똑같 이 나오는 일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전 세계의 언론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여, 이를 본 불가리 아 정부는 특별 수사를 벌이기도 했다. 상식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에 국민들은 모두 복권회사가 조작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학적으로 보면 이는 놀라울 일이 아니다. 런던 임 페리얼 칼리지 수학과 명예교수인 데이비드 핸드의 계산에 따르면, 로또의 방식을 이용한 복권 방식에 서 4,400번의 추첨(약 43년)을 반복하면 똑같은 당첨 번호가 두 번 나올 확률이 50%를 넘어가게 된 다.(계산 방식은 밑에서 설명할 생일 이론과 같다) 매주 추첨한다면 85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날 확률이 고, 불가리아에서 조금 일찍 일어난 것뿐이다. 이처럼 낮은 확률의 사건 시행이 꾸준히 반복된다면, 일 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

 

·생일 이론

 일어날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은 수학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시행횟수에 따른 확률의 기하급수 적 상승의 대표적인 예로 생일 이론을 들 수 있다.

 고등학교의 한 반의 인원이 30명이라고 가정할 때,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은 얼마일까? 고등학교 2학년때 배운 수학으로 답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답은 약 8%이다. 그렇다면 생일이 같은 한 쌍이 존재할 확률은 얼마일까? 이 문제는 위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와의 비교가 아닌, 임의 의 A 와 B가 같은 생일을 갖고 있는 확률을 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수준의 수학 으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식을 간단히 정리해보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명의 생일을 모두 다르게 하는 확률을 생각해보자. 우선 한 사람의 생일을 정하자.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의 생일과 다를 확률은 364/365이고, 3번째 사람이 두 사람과 생일이 다를 확률은 363/365이다. 따라서 30명 전부가 생일이 다를 확률은 (365/365)*(364/365)* ......(335/365)= 30%이고, 이 여집합인 본 문제의 정답은 약 70%가 된다.

 이 생일문제의 확률은 23명부터 1/2을 넘게 되고, 60명이면 100%에 근접해진다. 여러 차례 시도하 면 작은 확률처럼 보인 사건도 일어날 일이 매우 높음을 증명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만약 23명 이 상 모인 집단에 가면, 꼭 친구와 내기를 해보길 바란다. 51% 이상의 승률을 보장하니 말이다.

 

·우연과 우연이 겹친다면

 

 로또에 당첨되는 사건과 같은 생일을 가진 사람이 생기는 사건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사건의 주체 가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 내가 당첨되거나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을 찾는 확률은 우리의 상식대로 매 우 낮지만, 이를 확률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오히려 일어나지 않는 게 부자연스럽게 된다. 사실 확률 이 매우 낮은 사건은 우리 주변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로또에 당첨되거나 벼락에 맞는 것 처럼 뉴스에 실릴 법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연과 우연이 겹치는 사건은 일상 속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가장 간단하고 쉽게 알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오늘 내가 탄 지하철에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자가 타지 않았을 확률은 얼마일까.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숫자가 발명되기도 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비록 확률에 대한 형식적인 개념은 몰랐지만 <일어나기 힘든 일은 반드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 점을 이해한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라고 그의 저서 레토릭에서 언급했다. 작은 확률의 사건이 끊임없이 반복 된다면 언젠간 일어난다는 것을 경험에서 얻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말한 근본적인 진리를 깊이 새긴다면 우리는 정부가 시행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이 확산될 수 있는 시행 횟수(사회적 만남)를 0에 가깝게 줄인다면, 의료 체계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사태에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타 국가에 비해 압도적 으로 높은 시민 의식과 체계적인 확진자 동선 추적, 탄탄한 의료체계 덕에 한국은 외국과 같은 무분별 한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제 2차 코로나 파동이 올 확률은 매우 높다. 방역 선진국으로 불리우던 싱가폴과 뉴질랜드가 차차 붕괴된 것처럼, 우 리나라도 한 순간의 방심으로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

 

·슬로우 판데믹을 향하여

 

전염병의 확산에 대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전염병이 확산되는 속도가 의료 시설이 감 당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는 패스트 판데믹, 그리고 그 반대로 의료 체계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슬로우 판데믹이다. 패스트 판데믹의 경우, 치료받지 못한 감염자가 다시 바이러스 를 확산시키고, 한계에 부딪친 의료 체계가 결국 붕괴하여 국가 방역에 실패하게 된다. 이 사태에 다다 르면 세계가 백신을 발명하기 전까지 사회는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반면 슬로우 판데믹의 경우, 높은 수준의 관리로 나라가 최소한의 역할을 이행할 수 있게 된다. 확진자 를 사회에서 격리시켜 바이러스의 2차 확산을 막고, 확진자가 줄어드는 속도는 눈에 띄게 된다. 아픈 사 람은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고, 환자 수는 임계점을 넘지 않는다. 이 슬로우 판데믹은 정부의 지시보 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시작한 캠페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작은 확률이 일어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이로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현명한 대처임 을 알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매우 불편하다. 장거리 커플은 서로 만날 수 없고, 학생은 학교에서 모 두와 함께 배울 수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는 아주 작은 대가일 뿐이다. 권준욱 방역대책본 부장은 4월 11일 방역 대책 브리핑에서 ‘코로나 이전의 세상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라고 발표 하였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시민들이 다시 밖으로 놀러 나오지 않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발언이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조금씩만 더 불편함 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작성자) 기계공학 전공 14학번 이제하

 

출 처

·Flattening A Pandemic's Curve: Why Staying Home Now Can Save Lives-MARIA GODOY (https://www.npr.org/sections/health-shots/2020/03/13/815502262)

·The Coronavirus Explained & What You Should Do- Kurzgesagt (https://www.youtube.com/watch?v=BtN-goy9VOY)

·조던 엘렌버그. 틀리지 않는 법: 수학적 사고의 힘. Penguin Group. 2014

·데이비드 핸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더 퀘스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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